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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이야기
와이필 : 2014,08,17 11:53   |   조회수 : 528

참치



나에겐 캔 참치를 못 먹던 시절이 있다.



1990년대. 나는 제법 건실한 회사의 1년차 신입사원이었다.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시기를 지나 이룬 취업이었다. 검정색 양복과 회색 와이셔츠가 각 한 벌씩만 있는 그야말로 초라한 신세였다. 검정색과 회색은 때가 잘 타지 않아 세탁비가 절약되어 좋았다. 특히 회색 와이셔츠는 저녁에 세탁해서 빨래집게로 집어 고무줄로 당겨두었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부잣집 외아들 같다고 했다. 굳이 내 사는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면 이웃의 담장을 기어올랐다.


살림살이라고는 작은 전기밥솥과 밥그릇, 수저 한 벌. 그리고 몽고간장이 있었다. 나는 이웃담장의 호박잎을 쪄서 간장에 찍어 반찬으로 먹었다. 잎을 따면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웃들이 담장중간에 아카시아 덫을 놓았다. 나는 차마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우두망찰 달을 보며 슬피 울었다.



궁색이든 알뜰이든 견딘 보람이 있었던가.


그해 가을이 오기 전에 보증금 육백만원의 전세방을 구했다. 출입구를 주인과 같이 쓰지만 나만의 쪽창이 있어 하늘이 보였다. 요즘 같으면 전세로 꿈도 못 꿀 돈이지만 그때는 가능했다. 북한산이 지척인 불광동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산길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서 쉬면 그 자리에서 온 만큼 거리에 그 집이 보였다. 나는 길을 걸으며 옷이 땀에 젖을까 봐 러닝만 입고 마치 야간운동을 나온 사람처럼 뛰었다.



집주인은 칠순의 노인부부였다.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고 적적하던 차에 말동무나 삼으려고 나를 들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인부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입사 1년차가 무슨 여유가 있어 말동무나 되었을까. 나는 아침 일찍 나가 밤이 깊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말동무가 되지 못할 것을 예단한 집주인은 출입구를 막아버렸다.



원래는 미닫이 현관을 열면 거실이 나온다.


들어서면 정면에 안방이, 좌측으로 내 방 들어가는 문이 있다. 노인은 날이 어두워지면 현관문을 잠가버렸다. 말동무도 못되는 변변찮은 젊음에 대한 강짜로 봐야할 일이다. 입구가 따로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문에서 곧장 보이는 나만의 출입구가 있었다. 문제는 지난겨울에 설치한 바람막이를 제거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람막이는 나만의 출입구를 완전히 밀봉하여 원래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모양이었다. 힘쓰기 어려운 바깥노인은 방한용 바람막이를 몇 년 더 써먹을 계산이었다.



직장선배들이 굳이 내가 사는 동네까지 오겠다고 다그친다.


2차 장소를 찾던 그들의 선택은 맛있기로 유명한 응암동 감자탕거리였다. 내가 사는 집과는 택시로 기본요금거리다. 술이 거나해지면서 자연스레 내 방에서 하룻밤 자고가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혼자 사는 방이라 초라하다며 극구 반대했다. 그렇지만 직장생활이란 게 어디 그리 만만한가. 직장선배=군대고참. 기어이 침묵의 내 말을 긍정의 뜻으로 알아서 받고 일잔 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싶었다.



속옷만 입고 집으로 향했던 게 단순히 운동 탓이기만 할까.


나는 선배들을 뒤로 두고 마당에서 옷을 벗었다. 양복을, 셔츠를. 그리고 바지를 마저 벗었다. 어떤 선배는 올빼미 같은 눈을 했고 어떤 선배는 무얼 잘못 봤다는 듯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노인부부의 방은 이미 불이 꺼져있었다. 나는 내방 쪽창을 뜯어내고 팬티만 입은 몸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선배들의 눈에 나는 살찐 백사 같았을 것이다. 쪽창을 통해보는 그들은 한눈에도 대략난감이었다. 돌아가자니 뱉은 말은 있고 들어가자니 꼴사납고. 결국 그들은 줄지어 팬티바람으로 쪽창을 넘었다.



남자 6명이 속옷 바람으로 둘러앉으니 고개만 돌려도 숨이 턱턱 막혔다.


우리는 몇 마디 잘 자라는 안부만 나누고 각자의 잠이나 생각에 빠졌다.



다음날. 전에 없던 선배들의 친절은 당황스러웠다.


살이 쪄서 못 입게 되었는데 너 입어보고 맞으면 입든가. 하며 무심하게 셔츠를 건네는 선배. 여수에서 갓김치가 올라왔는데 이 많은 걸 내가 언제 다 먹느냐. 하며 큰 몸짓하는 선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힘내! 파이팅! 여직원이 다 듣게 눈치 없이 덤비는 어떤 선배. 그는 우리가 힘 좀 써 볼게. 라며 알쏭달쏭한 끝을 남겼다.



그리고 추석이 왔다.


그즈음 나는 매우 쓸쓸해진다. 찾아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연휴전날이라 반나절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마당에 집주인부부가 서있고 그 앞에는 상당한 양의 박스가 쌓여있었다. 노인은 모두 내 앞으로 온 물건이라고 했다. 박스를 뜯었더니 전부 참치선물세트였다. 작은 박스 표면에는 바탕체로 이렇게 찍혀 있었다.



-풍성한 한가위를 맞아 가내에 행복과 행운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대표이사 최0기 배상.



총각이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 라고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어줬다. 어차피 쪽창으로 들어 갈만한 양이 아니었다. 나는 누울 공간만 남기고 방안에 참치박스를 가득 채웠다. 일부는 노인의 차지라며 거실에 두었다. 그제야 노인은 늙으면 초저녁잠이 많아서...... 라며 당신의 무정함을 고백했다.



캔 참치는 가로5*세로3 작은 선물박스에 15개씩이다.


선물박스 6개는 다시 큰 포장박스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24박스였다. 따라서 낱개로는 360개가 된다.



나는 그것들을 구정 때 스팸이 오기 전에 절반을 먹었고 이듬해 추석 전에 마저 먹어치웠다. 그러나 먹었다와 먹어치웠다는 최소한 지구에서 목성까지 만큼의 괴리가 있었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울기도 한다더라. 나도 처음엔 울었다. 나중에는 성질을 다 버렸다.



세월이 지나 직장에서 내 위치가 명절선물을 선택할 정도가 되었다.


직원들이 식용유나 생활용품 등을 추천했다. 너무 뻔했다. 혹시나 해서 가장 최근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참신한 제안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제 생각에는 참치세트가 어떨까 생각합니다. 영양이 어쩌고저쩌고......



이런 젠장!


나는 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그만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래도 그 시절. 참- 그립다.